직장다니는 혜연

또 한 번의 이직, 후회는 없다.

세포집 2024. 7. 7. 15:03

1.

성인이 되자마자 정신없이 달려온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긴 공백기를 거쳐 이번 연도에 들어간 회사. 그 회사의 퇴사를 앞두고 있다. 회사에는 아직 나의 퇴사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직할 곳의 처우를 방금 막 확정 지은 참이다. 재직기간을 직급체계에 고려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제 갓 대리가 된 5년 차. 길지 않은 재직기간에 벌써 네 번째 회사라니. 어찌 보면 정착을 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또 어찌 보면 그래도 쓸모가 있어 이곳저곳에서 합격의견을 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나는 당연히 후자일 것으로 생각하며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올려보려 애쓰고 있다. 

 

2. 

이번 년도에 큰 결심을 하고 이직한 현 직장. 글로벌로 보면 상당한 규모의 회사이며 여러 국가들의 인재들이 '진짜'

 함께 협력하며 근무하는 회사다. 한국에 정식으로 출범한 지 많은 기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탄탄한 고객사들을 마련해 놓은 상태이고, 무엇보다 내가 놀란 점은 많지 않은 구성원이 모두 상당한 경쟁력을 지닌 인재라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화를 해보며 느낀 점은 대부분의 한국 구성원들은 회사의 글로벌적인 면모와 주도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에 매력을 느껴 입사한 이들이었다. 그들과 대화하며 나 또한 이곳에서 많은 챌린지에 부딛히며 성장하기를 꿈꾸었다. 

 

3. 

실제 수익을 일으키는 비즈니스 파트, 즉 현업과 내가 속한 경영지원 부서의 역할과 회사가 기대하는 바는 상당히 다르다. 비즈니스 파트의 고객이 회사 외부에 있다면, 경영지원 파트의 고객은 내부 직원이다. 이 말은 회사의 방향(경영진의 의사결정)과 문화가 경여지원 부서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나와 같은 소위 문과직무, 경영지원 부서를 선택한 이들은 프로덕트 보다도 회사 자체의 분위기와 경영진의 성향을 입사 전까지 치열하게 알아보며 고민해 보아야 한다. 괜한 말들을 하고 있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나와 맞지 않은 회사를 선택했고 이직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4. 

경영지원 부서를 하며 내가 경기 일으키듯 싫어하는 말이 있다. "백오피스(back office)". 구글에 검색해 보면 "백 오피스(Back office)는 일선 업무 이외에 후방에서 일선 업무를 지원하고 도와주는 부서 또는 그런 업무" 라는 정의가 나온다. 물론 맞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경영지원 부서의 고객은 내부 직원이니... 하지만 지극히 나의 경험으로만 보았을 때 백오피스라는 단어를 쓰고 "우리는 백오피스니까" 라는 뉘앙스를 흘리는 사람들과 회사는 해당 직무들에 대해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또 요구한다. 비즈니스 파트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불편함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그 외의 것들을 지원해 주고 소위 "뒷정리해주는" 부서를 경영진에서 요구하고 본인들도 그것을 자발적으로 따르는 느낌이랄까. 내가 다니고 있는 현 직장이 그렇다.

 

5.

여기서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건, 나는 백오피스 직군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업, 현장 일선에 나가 프로덕트를 만들고 영업하는 이들이 1순위라는 것은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들이 잘해야 회사가 유지되고 그 회사를 최적화시키는 것(경영지원 부서의 업무) 또한 회사가 우선 생존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 경영지원부서도 전면에 나서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만 우리 또한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전문적이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이들이기에 상호 존중하고, 또 그들에게도 먼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룸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이 말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정확하게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같은 직군인 이들은 내가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은지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6. 

내가 이제 곧 나가게 될 현 직장은 철저히 백오피스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운영의 역할만 하려는 수동적 조직이다. 안정을 추구하고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없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기획하려 하지 않는 곳. 비즈니스 파트가 원치 않으면 우리는 별도로 할 이유가 없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 분위기 속에서 나 혼자 이슈를 제기하고 개선안을 설득하고자 하는 노력은 큰 의미가 없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정말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적응해보려 했지만 적응은 커녕 나날이 커지는 답답함으로 결국 다른 직장을 선택했다. 회사와 직원은 정말 fit이 잘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도, 해당 직원도, 그 직원과 일하는 동료 모두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선물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정말 성향의 차이로 간극이 벌어지는 팀이 정말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 못 하고 수많은 대화를 통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그 상황! 그 상황을 내가 겪었다. 

 

7.

나의 이직은 누구의 잘못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회사와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 겪어 보는 경험. 많이 배웠고,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안정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나의 현직장은 정말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기반 업무들을 주도적으로 실행해 오던 나로써 단순 운영업무의 무한 반복은 나의 자존감을 낮추기까지 했다. 세 번째 이직, 네 번째 직장. 누군가는 끊기 없다, 커리어가 꼬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잘만 살고 있다. 또 뒤에 했던 나의 선택과 행동들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한 번 사는 인생. 그 안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생활.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정말 몰입해서 하고 싶다. 직장인으로 살겠다 다짐한 이상 온 힘을 다해 후회 없이 일을 할 때 하루살이 삶의 보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8.

혹여 경력년수가 짧지만, 다수의 이직과정을 거쳐와 앞이 막막한 이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응원하고 싶다. 단순히 돈 만 보고 이직한 분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회사 또는 직무와 잘 맞지 않아 이곳 저곳 방황하는 경력 철새라면, 분명 여러분과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나도 철새니까!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죽고 나서 도착할 수도) 물론, 단순히 문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역량과 실력을 계속 성장시켜 회사 또한 대상자를 정말 필요로 한다는 전제하에! 결국 회사의 니즈와 나의 니즈를 서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을 골라야 하니까 말이다. 네 번째 직장이라니.. 첫 직장 최종면접과 합격 후 첫 입사일에 느꼈던 설렘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시간은 벌써 5년 가까이 지났다니 놀라울 뿐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이 발판이 되어 그 다음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 한 번의 이직. 도망가듯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후회는 없다.